신촌 이대 상가 거리 발걸음이 끊어지다.

신촌 이대 상가 거리 에 사러 갈 만한 물건이 없게 된 걸 본지는 꽤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분식점 부터 시작해서, 소모품 가게가 자취를 감추고, 점점 옷가게 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대학가 앞이라 해도 신촌, 이대는 그 대학가를 넘어선 상권이었다. 그래서 고액의 상점 임대료를 내더라도 신촌 이대 앞에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이유도 그럴것이다.

그런데 옷가게 뿐 아니라 학생들이 자주 찾는 저가의 식당 마져 하나 둘씩 없어지거나 바뀌고,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던 신촌의 추억은 이제 사라져 볼 수가 없다.

신촌 이대 상가 거리 코로나 이후의 모습

신촌 이대 상가 거리 에는 코로나19가 마지막 카운터 펀지와 같았다. 상가가 점차 사람들의 통행이 줄어드는 건 다양한 문제겠지만, 코로나19 영향을 실로 막대했다. 물론 종로나 강남 같은 다른 상권도 코로나19의 영양을 받고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종로상권도 중국관광객이 어느 정도 들어오면서 회복하고, 강남도 서서히 사람들이 예전 분위기를 되찾아 가는 중에도 신촌 이대는 상권이 회복되지를 않고 있다.

신촌 이대 상가 거리 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즈음 사람들은 홍대와 합정, 상수의 거릴를 찾았고, 오히려 공장과 기계상점이 있던 문래동이 핫플레이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촌 이대 상가 거리 문제는 상가가 문을 닫고, 상권이 옮겨가게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발길이 줄어드는 게 문제다. 지난 23년 4분기 합계 출산률이 0.65였다. 23년 전체 합계 출산률은 0.72였다고는 하지만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더불어 예전에 상식적으로 통하던 일들이 달라지고 있는 흐름에 접어 든 것이 문제이다.

신촌 이대 상가 거리 예측불가능한 상황, 인구의 문제가 시골 초등학교의 폐교일 때 부터 서울 고등학교의 폐교에 이르기까지 사실은 경제적인 문제와는 그렇게 연결이 깊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인구의 문제가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촌 이대 상가 거리 우리의 경제는 계속 발전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퇴직하고 왠만한 가계를 열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왠만한 가계는 그냥 왠만한 가게로 망하고 마는게 정설이 되었다. 가난한 퇴직 586세대 지금의 노년층에게 붙혀진 이름이다. 민주화의 세대라고 불리웠던 그들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을 줄은 몰랐다. OECD 노년 빈곤률 최고, 일본과 미국이 대략 19% 정도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은 당당히 그 두 배를 넘는 전체 노인 인구의 50%가 노인 빈곤 인구이다. 두 명중 한 명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가난하니 쓸 돈이 없고 소비해주는 사람이 적어지니 다시 경제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청년은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해서 가난하고 노년은 퇴직인구여서 가난하고 그나마 경제인구인 30,40대가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신촌-이대-상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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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취업률을 살펴보면서

미국은 취업률은 미국의 경제 지속성을 나타낸 중요한 지표이다. 이중에서 취업률 중 서비스업의 비중을 보면 23년 기준으로 86%가 서비스업이다. 과거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서비스업은 경제 활동의 중요 지표로 보기 어려웠다. 특별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으로 볼 수 있을 만한 서비스업의 종류 조차 적은 상태에서 서비스업은 소모적인 경제 활동에 불과 해보였다.

그러나 이제 그 서비스업의 상점과 상가가 문을 닫자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다시 보게 되었다. 경제활동에서의 사람의 중요성, 사람을 어떻게 고용하고, 사람을 어떻게 모으고, 사람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 것, 사람이 결국 경제활동의 모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믿을만한 회사, 믿을 만한 가게에 취업해서, 믿을 만한 음식을 사 먹고, 믿을 만한 물건을 사고 믿을 만한 곳을 찾는 것이 경제 활동이다. 믿을 만한지 않으면 경제 활동은 일어나지 않고 멈춘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촌과 이대의 발걸음이 끊어진 것은 인구 감소와 코로나19의 영향도 크지만 사람이 발걸음이 끊어진 곳에서 그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서울의 무작정 높은 임대료는 더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한 임대료를 낼만큼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싼 갚을 주고 이대 옷을 살 필요를 못느낀 다는 것이며, 5000원짜리 학식보다 상가의 비싼 점심이 탁월하게 더 맛있다고 하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물쌍한 2024년이 지나고 있다. 상식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맞는지 판단이 어려운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게 있다. 사람이다. 돈돈돈으로 귀결되는 모든 경제활동 속에서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극도의 1%부자를 꿈꾸는 세상속에서 여전히 살 수 있는 길은 사람이다.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그 모든 활동 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살게 할 것이다.

극도의 경쟁으로 치닫던 우리의 길은 그래서 멈추어야 한다. 혼자 잘 사는 세상은 없다. 사람이 끊어지고 믿음이 사라지면 이윤도 없고 경제도 없고 살아갈 길도 없다. 이제 모두의 길에서 모두가 함께 사는 모두의 세상으로 눈을 돌릴 때이다.